
가장 작기에 가장 쉽게 지워지는 이름, 마우스와 래트 좁고 긴 아크릴 실린더 안에 물이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그 안에 빠진 마우스들은 죽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벽을 긁으며 탈출하기 위해 발버둥칩니다. 하지만 미끄러운 아크릴 벽을 타고 올라갈 방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살아남기 위해 온 힘을 쥐어짜던 마우스들은 결국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물 위에 둥둥 떠있게 됩니다. 1977년 로저 포솔트(Roger Porsolt)가 개발한 이른바 '강제수영테스트(Forced Swim Test)'의 현장입니다. 과학자들은 쥐가 움직임을 멈추는 이 상태를 '행동적절망(Behavioral Despair)', 즉 인간의 우울증과 같은 상태로 해석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우울증 치료제를 투여한 쥐가 그렇지 않은 쥐보다 더 오래 버둥거리며 수영을 하면, "이 약이 우울증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인간의 우울증 약을 만들기 위해 수십년간 수많은 쥐를 물속에 빠뜨려온 이유입니다. 인간의 자의적 해석이 남은 잔인한 오류 그러나 최근 뇌과학계와 글로벌 제약사들은 이 실험이 과학적으로 전혀 타당하지 않다며 앞다투어 폐기하고 있습니다. 뒤늦게 밝혀진 반전은 참으로 서글픕니다. 쥐가 물에 떠서 움직이지 않은 것은 절망해서 포기한 게 아니었습니다. 힘을 빼고 둥둥 떠서 체력을 아끼는 '영리한 생존 전략(에너지 보존)'이었음이 동물행동학자들에 의해 증명된 것입니다. 실제로 이 실험을 한번 경험해본 쥐는 두 번째 물에 빠지면 처음부터 힘을 빼고 곧바로 물에 뜹니다. 상황을 기억하고 영리하게 적응한 것이지, 우울해진 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인간이 우울증 약을 복용하면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최소 수주에서 수개월이 걸립니다. 반면 이 실험은 약을 주사하고 겨우 '몇 시간 만에' 쥐가 발버둥을 더 친다는 이유로 효과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임상적으로 인간의 우울증 메커니즘을 전혀 대변하지 못하는 셈입니다. 결국 인간의 자의적인 해석으로 동물에게 극심한 익사 공포만 안겨주었을 뿐, 실제 인간의 우울증 치료에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성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지능과 감정을 얼마나 과소평가해 왔는지, 그리고 우리가 가해 온 고통이 얼마나 맹목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압도적인 희생자 수, 그러나 보이지 않는 존재들 우리가 '실험동물'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얼굴은 누구인가요? 아마도 슬픈 눈망울의 비글이나 우리와 친숙한 고양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실험실에서 가장 압도적인 숫자로, 가장 처절하게 희생되고 있는 존재들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실험실 동물의 80~90%를 차지하는 작은 설치류 마우스와 래트입니다. 단지 몸집이 작다는 이유로, 혹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이유로 이들의 희생은 너무나 쉽게 당연시되거나 무미건조한 '숫자'로만 기억되곤 합니다. 심지어 현행 법적∙제도적 보호망조차 이 작은 생명들을 온전히 품어주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들도 우리와 똑같이 고통을 느끼고 두려움을 아는 엄연한 생명입니다. 숫자가 많다고 해서, 몸집이 작다고 해서 그 희생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가장 작기에 가장 쉽게 지워지는 이름, 마우스와 래트. 오늘 하루만큼은 인간을 위해 가장 처절하게 부서져 간 이 작은 영웅들의 희생을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비글구조네트워크 주말에 만나는 실험동물이야기 |